충청도답사(03)...2008년 봄날의 보은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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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장소 |
답사 여행 |
답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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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군 |
2008년 4월 12일 |
<답사기록>
포천출발-삼년산성-선병국가옥-법주사-탑송-용송-화양구곡-문경석탄박물관
5:30 8:40 10:10 11:00 13:20 15:00 16:30
2008년 봄날의 보은기행
한남금북정맥을 산행하면서 자주 찾았던 보은 땅이다. 한남금북정맥이 백두대간과 만나는 속리산 천황봉은 148km의 대장정이 끝나는 지점이기에 감회가 남달랐다. 그 보은 땅을 2008년 봄에 다시 찾아간다.
경기도 포천시에서 보은까지는 꼬박 세 시간 거리여서 새벽 5시에 일어나 갈 길을 재촉한다. 새벽길을 달려 청원-상주간 고속국도로 들어서니 이내 보은IC를 만난다. 사실 청원-상주간 고속국도는 작년에 개통이 되어서 웬만한 지도에는 공사중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보은IC를 빠져나와 보은 시내로 들어가니 삼년산성 이정표가 나온다. 법주사 가는 길로 방향을 잡았는데 정작 삼년산성 입구에는 안내판이 없어서 법주사 방향으로 한참을 가다가 되돌아 나와 올바로 찾아들어간다.
8:40
보은읍 동쪽 어암리 오정산에 있는 삼년산성은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석축산성으로 평가되어 고대 축성법 연구에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성내에는 연못터와 우물터가 있고 성의 둘레는 1.8km, 높이는 13m에 이른다.
삼년산성은 신라 자비왕 13년(470년)에 백제가 한성에 도읍을 두고 있을 때 백제의 남진에 대비해 쌓은 성이다. 백제가 사비성으로 수도를 옮겨가자 백제와 고구려의 침입에 대비하는 전초기지 역할을 하게 된다. 신라 진흥왕 때인 551년에는 백제 성왕의 대대적인 공격이 있었는데 삼년산성에서 출병한 군사의 도움으로 백제 군사 3만 명을 몰살시키고 백제 성왕을 죽이는 개가를 올리기도 한다.
<사적 제235호 삼년산성>
그러나 이런 역사적인 사연도 흥미가 있지만 산성 여행의 즐거움은 조망에 있다. 보은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산성의 정상에 서니 따스한 봄바람이 살랑거리는 가운데 산성의 중요성이 한눈에 느껴진다.
나무 계단 사이로 앙증맞게 생긴 제비꽃이 무리를 이루며 피어 있고 산성의 석축사이에는 진달래가 만발하다. 산성을 따라 한 바퀴 도는 산책길은 원형이 많이 파괴되긴 했지만 아직까지 남아있는 석축에 감탄하면서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낸다.
<삼년산성>
삼년산성을 구경하고 돌아 나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동학농민혁명 기념공원으로 간다. 길은 그야말로 환상적인 벚꽃천지다. 진해의 벚꽃이나 하동 쌍계사 벚꽃길은 잘 알아도 속리산 벚꽃길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속리산 법주사 가는 도로 양편에 심어져 있는 벚꽃은 아름다운 꽃길이다.
<속리산 벚꽃길>
동학혁명기념공원이 있는 보은읍 성족리 북실 마을은 보은 동학군의 집단 매장지이다. 지금은 기념공원조성작업이 한창이어서 바깥에서 구경만 하다가 돌아서고 말았지만 사실 이곳은 지도상에 보은 동학군 집단매장지로 안내가 나와 있다.
동학 혁명 2차 봉기 때 동학군은 보은 읍내로 전진하다가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거의 전멸하면서 북접 동학군의 마지막 명맥은 끊어지게 되었다. 이 전투에서 북접의 최고 간부였던 대접주 임국호, 이원팔, 정대춘 등 핵심간부 상당수가 전사하였고 동학군을 학살한 일본군은 2600여 명의 시신을 근처에 묻어 버렸다. 당시 목숨이 끊어지지 않은 부상자들도 생매장되었다고 전해진다.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
10:10
선병국 가옥으로 간다. 동학농민혁명 기념공원에서 돌아 나와 25번 국도를 따라 외속리면사무소가 있는 방향으로 5km 내려간다. 속리산 방향의 505번 지방도를 따라 들어가니 선병국 가옥이 나온다.
외속리면 하개리 삼가천 개울가에 자리한 선병국 가옥은 1920년대에 지은 집이다. 개화의 물결을 타고 개량식 한옥 구조를 시험하던 때에 진취적인 기상으로 새로운 한옥의 완성을 시도한 것이어서 학술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데 건축 당시에 최고의 목수들을 가려 뽑아 지은 집이라고 한다.
<솟을대문>
<선병국 가옥 안채>
집은 안채, 사랑채, 사당의 세 공간으로 구획하여 안담으로 둘러싸고 그 밖을 바깥담으로 크게 둘러쌓았는데 1980년 대홍수 때 피해를 입어 많이 허물어져 예전의 당당하던 모습은 볼 수 없다. 바깥담 남쪽 솔밭 숲속에는 선씨 선조의 효자정각이 서 있다. 풍수상으로는 연꽃이 물에 뜬 형상인 연화부수형이어서 자손이 왕성하고 장수하는 명당이라 한다.
지금은 건축주의 두 손자가 살고 있다는데 안채에는 드넓은 마당 한쪽으로 하인들이 거주했음직한 행랑채가 줄지어 있고 오래된 세월을 견디어온 안채의 모습도 퍽 인상적이다. 마당을 가로질러 안채를 벗어나고 보니 ‘안채는 집주인이 거주를 하고 있는 공간이므로 출입을 자제해 달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마당 한켠의 장독>
선병국 가옥을 나와 속리산 법주사로 향한다. 충청북도의 동남부에 위치한 보은군은 동쪽으로 경북 상주시, 서쪽으로 청원군, 남쪽으로 옥천군과 닿아 있는데 동쪽의 백두대간과 한남금북정맥이 보은을 구성하는 주요 산줄기다.
속리산 천황봉에서 줄기를 뻗어 내리는 한남금북정맥이 보은에서 속리산 법주사로 넘어가는 큰 고개를 만들었다. 갈목재와 말티재다. 그래서 갈목재로 가는 길은 산길이다. 산길로 경사를 높이기 전에 아름드리 소나무 하나를 만난다.
천연기념물 제352호인 서원리 소나무가 우람찬 자태를 드러낸다. 법주사로 들어가는 길의 정이품송이 외줄기로 곧게 자란 모습이 남성적이고 서원리 소나무는 갈라진 모습 때문에 여성에 비유하여 정부인송으로 불리기도 한단다.
<서원리소나무>
서원리 소나무를 정이품송과 내외지간으로 하여 정부인송으로 부른다는 말이 퍽 재미있다. 어떻게 소나무를 두고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잠시 후에 정말 그럴듯하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서원리 소나무를 구경하고 갈목재를 넘어 법주사로 들어가는 길에 정이품송을 만났는데 정이품송이 선비의 기개가 느껴진다면 서원리 소나무는 풍성한 어머니의 품으로 생각되어지는 것이다.
천연기념물 제103호인 정이품송은 1464년 신병으로 고통받던 세조가 속리산을 찾아 이 나무 아래에 이르러 타고 가던 연(가마)이 나뭇가지에 걸릴 것을 염려하여 ‘연 걸린다’고 하자 늘어졌던 나뭇가지가 스스로 하늘을 향하여 무사히 통과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또 한양으로 돌아갈 때에는 때마침 쏟아진 소나기를 피할 수 있어 신기하고 기특하여 나무에게 오늘날 장관 벼슬에 해당하는 정이품(正二品)의 벼슬을 내렸다는 전설이 전한다.
<정이품송>
정이품송 앞에서 낯선 아저씨가 접근한다. 법주사로 들어가시는 길이냐면서 명함을 건네준다. 법주사 구경하고 나오면서 식사하고 가라고. 주차하려면 비용이 들테니 식당앞에 차를 세워두고 구경을 다녀오면 주차비를 아낄 수 있단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 말로 ‘낚였다’.
아저씨를 따라 식당 앞에 차를 세워두고 법주사로 향한다.
4월 초순이지만 오늘은 구름까지 하늘을 덮고 있어서 쌀쌀한 날씨인데 법주사를 향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오리숲을 채운다. 왜 오리냐 했더니 일주문에서 법주사까지 오리(2km)여서 오리숲이라 부른단다. 오리숲은 온갖 나무들의 전시장인데 꽃이 피고 잎이 무성해지는 5월 이후에는 꽃과 나무공부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갖춰질 것 같다.
11:00
속리산 기슭에 천년고찰 법주사를 다시 만난다. 한남금북정맥의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들렀던 법주사는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다. 신라 진흥왕 14년(553년)에 의신조사가 처음으로 창건한 법주사는 혜공왕 12년(776년)에 진표가 그의 제자들과 미륵신앙의 중심도량으로 중창하면서 대찰의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정유재란 때 왜군들의 방화로 모조리 불에 타 버린 것을 사명대사가 대대적인 중건을 했으며 그런 과정속에 많은 건축물과 미술품들이 새로 만들어져 봉안되어졌다. 경내에는 국보 제55호인 팔상전과 국보 제5호인 쌍사자석등, 국보 64호인 석련지를 비롯하여 많은 문화재가 소장되어 있다.
<속리산 법주사 금동미륵대불>
<법주사 경내의 목련>
법주사는 보은의 얼굴이라고 한다. 보은 안에 있는 문화재의 절반 이상이 법주사와 속리산 일대에 있고 그 중에서도 국보 석 점은 모두 법주사에 있다. 법주사를 찾아오는 관광객이 한 해에 100만 명이 넘어서 이 깊은 산골에도 서울과 각 지방을 오가는 버스터미널이 있을 정도다. 법주사를 답사하는 방문객과 함께 속리산을 등산하는 사람들도 많을 터이니 사계절이 붐비지 않겠는가.
눈이 부시게 하얀 목련이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는 법주사를 뒤로 하고 다시 돌아나간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차를 맡겨 놓았던 식당으로 들어간다. 속리산의 대표 음식이 무엇인지 둘러보니 산사의 음식점답게 ‘산채비빔밥’이 눈에 띈다.
<산채비빔밥>
보은을 좀 더 자세히 둘러보고자 한다면 답사를 할 만한 곳이 많겠지만 속속들이 살펴볼 엄두를 내지 못한다. 대표적인 곳만 우선적으로 둘러보기로 하고 보은군을 벗어나 다음 답사지를 향하기로 했다.
괴산의 화양구곡으로 간다. 지난번 1월에 괴산군을 답사할 때 화양구곡은 괴산군에서도 남쪽에 치우쳐 있어서 제외했던 곳이다. 보은에서 화양구곡으로 간다. 지나가는 길에 두 그루의 소나무를 감상하기로 한다.
13:20
보은에서 상주로 가는 25번 국도상의 상주시 화서면 상현1리에는 이무기(큰 구렁이) 동물담을 가지고 있는 수령 500년의 소나무가 있다.
<탑송옆의 나무장승>
예전에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던 돌탑이 있었기 때문에 주민들은 돌탑이 있는 소나무라는 뜻에서 일명 탑송(塔松)이라고 부르며 또는 나무의 형태가 탑처럼 생겼기 때문에 탑송이라고도 하는데 이 소나무는 마을 사람들에 의하면 전설상의 이무기가 살고 있었는데 흐린 날에는 빗속을 뚫고 하늘로 오르고자 애쓰던 이무기의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이무기의 전설이 깃든 탑송>
탑송을 둘러보고 있는데 또 다른 방문객이 찾아온다. 외진 마을의 탁 트인 평지에 자리잡고 있는 소나무를 보려고 발품을 팔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노거수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일테다.
다음 방문지를 향하여 발길을 옮긴다. 49번 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향한다. 경상북도 상주시와 충청북도 괴산군의 경계가 되는 지점에 입석보건소가 나온다.
<괴산군 왕소나무>
입석보건소의 맞은편 골목으로 들어가니 건너편 언덕에 커다란 소나무가 기다리고 있다.괴산군 청천면 삼송리에 위치한 왕소나무를 ‘용송’으로 부른다는데 가까이 다가가 소나무의 자태를 보니 한 마리의 붉은 용이 승천하는 형상을 하고 있다.
수령 600년의 용송은 높이가 13.5m이고 땅에서부터 세 그루가 함께 자라서 여러 갈래의 굵은 가지를 사방으로 뻗어낸다. 누군가는 이 소나무의 형상을 보고 “소나무에서 기운이 뿜어 나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삼송리라는 동네이름의 유래도 이 소나무에서 나왔다고 한다. 요즘도 마을 사람들이 매년 정초에 모여서 용송 앞에서 당산제를 지낸다는 이야기가 있고 보면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는 마을 사람들의 염원을 이 소나무에서 엿볼 수 있다.
<삼송리의 용송>
15:00
화양구곡으로 간다. 32번 국도를 따라 화양동계곡으로 불리는 화양구곡의 입구 주차장에 도착한다. 화양동의 골짜기는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금강산 남쪽에서는 으뜸가는 산수”라고 했듯이 예로부터 경치 좋기로 이름난 곳이다.
청천면의 화양리에서 송면리 쪽으로 화양천의 물줄기를 끼고 십리쯤에 걸쳐 깃들어 있는 이 골짜기는 모두 아홉 군데가 두드러지기 때문에 화양동 구곡이라고 불려지는데 단양 팔경과 마찬가지로 곳곳에 옛 사람들이 새긴 글씨가 남아 있어 이곳의 깊은 내력을 전해준다.
화양동의 골짜기는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서 개발이 덜 된 탓인지 비교적 깨끗한 자연환경이 남아 있다. 화양동의 골짜기는 물과 숲에 어우러져 있는 바위의 생김새가 두드러지는 경치이다. 구곡 중에서 물이 두드러지는 곳은 그 물에 구름과 그림자가 맑게 비친다는 제2곡 운영담과 맑은 물에 모래가 금싸라기 같다는 제4곡 금사담의 두 곳 뿐이며 나머지는 바위와 관계가 있다.
바위가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듯하다는 제1곡 경천벽, 송시열이 효종 임금의 죽음을 슬퍼해서 올라가 울었다는 제3곡 읍궁암, 마치 별을 관측하는 곳 같다는 우뚝한 제5곡 첨성대, 구름이 드리울 만하다는 제6곡 청운대, 꿈틀거리는 용을 닮았다는 제7곡 와룡암, 옛날에 푸른 학이 살았다는 제8곡 학소대 그리고 개울 복판에 흰 바위가 티없이 넓게 펼쳐져 있는 제9곡 파관이 모두 바위를 일컫는 말이다.
<화양구곡>
<제1곡 경천벽>
몇 개의 경치를 하나로 묶을 때에 크게는 나라 안의 ‘대한 팔경’이라든가 작게는 동해안의 ‘관동팔경’ 또는 단양의 ‘단양팔경’처럼 8이라는 숫자로 묶는 것이 우리 귀에 익숙하다. 그런데 괴산군에서는 ‘화양동 구곡’ 외에도 ‘선유동 구곡’과 ‘고산 구경’처럼 9라는 숫자로 묶어 다른 어느 곳보다도 ‘산 좋고 물 좋은 곳’이라는 점을 은근히 내세운다.
계곡을 따라 경치를 감상하며 골짜기로 들어간다. 어느 대학교에서 MT를 나왔는지 조용한 계곡이 이들의 고함소리로 요란하고 가족들과 함께 산책을 나온 사람들은 오순도순 다정다감한 발걸음으로 나무계단을 따라 간다.
<골짜기의 맑은 물>
화양구곡이 유명한 것은 조선 시대의 큰 유학자 송시열을 받들고 제사지내던 화양서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화양서원은 거기에 딸린 만동묘로 더욱더 이름이 높던 곳이다. 지금은 그 사실을 알려주는 비석만이 외롭게 서 있을 뿐이지만 17세기 말로부터 19세기 중엽을 넘기까지 만동묘를 등에 업은 화양서원은 나라안에서 가장 힘있는 서원으로 군림했다.
만동묘가 그러한 권위를 갖게 된 것은 조선과 깊은 유대관계를 가졌던 명나라의 두 황제 신종과 의종을 모셨기 때문이다. 신종은 임진왜란 때 조선에 군대를 보냈던 황제이고 의종은 청나라에 나라를 빼앗긴 마지막 황제이다.
<화양서원>
그런데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볼모로 갔다가 마침내 풀려난 봉림대군이 조선의 17대 임금인 효종이 되자 청나라에 대한 적개심은 유달랐고 그 뒤로 만동묘는 청나라 오랑캐를 무찌르려는 온 겨레의 뜻을 상징하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화양서원의 횡포는 비롯되었다. 이른바 화양묵패를 발행하여 아무에게서나 재산을 마음대로 거두어들이고 거기에 따르지 않으면 벌을 주었다. 건달로 지내던 시절에 여기에서 봉변을 당했던 대원군이 정권을 잡고 나서 이곳을 ‘도둑놈 소굴’이라면서 없애 버렸고 뒤이어 다른 서원들도 그렇게 한 것은 이러한 횡포를 미워했기 때문이다.
<공사중인 송시열의 서재 암서재-수리중이다>
16:30
화양구곡을 돌아 나와 문경 석탄박물관으로 간다. 일정을 점검할 때 화양구곡을 답사하고 나면 어느 쪽으로 가야 고속국도와 빠르게 연결되는지 살펴보았던 것인데 중부내륙고속국도로 가는 길에 석탄박물관이 있어서 일정에 끼어 넣은 것이다.
32번 국도를 돌아 나와 517번 지방도와 922번 지방도를 차례로 연결하니 문경새재IC로 가는 길에 석탄박물관이 나온다. 여기서 뜻밖에 SBS 사극 연개소문의 촬영지를 만난다.
<SBS연개소문의 요동성>
특이한 것은 산중턱을 밀어내고 사극촬영지로 꾸민 것이다. 그래서 구경을 하려면 모노레일열차를 타거나 걸어서 올라가야 하는데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모노레일 열차를 타고 산중턱까지 올라간다. 걸어서 올라가는 것과 요금에 상당한 차이가 있음에도 말이다.
우리는 걸어서 올라가기로 한다. 요동성 주변을 구경하고 건너편 산중턱에 있는 고구려 왕궁까지 걸어가는 길이 산책을 겸하여 관광지로 잘 조성했다는 느낌이 든다.
<고구려 왕궁>
<모노레일열차>
산중턱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도 훌륭하고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장소라는 느낌과 함께 사극촬영지를 내려와 석탄박물관으로 들어간다.
연탄모습으로 꾸민 독특한 모습의 문경석탄박물관은 1999년 문경시 가은읍 옛 대한석탄공사 은성광업소에 개관한 전문박물관이다. 1∼2층 중앙전시실과 갱내전시실·야외전시장 등의 시설과 함께 광산장비 및 광물 787종 4,571점이 전시되어 있는데 실제 갱도 230m도 전시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어서 인상적이다. 갱내의 어려운 작업환경이 사실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인데 은성광업소는 1938년부터 1994년까지 석탄을 캐던 곳이다.
<연탄모양의 석탄박물관>
<갱내 모습 재현>
그해 겨울/ 무너진 막장에서 죽은/ 이름없는 젊은이의/ 움켜쥔 주먹에도 석탄은 묻어 있고/ 술 취해 돌아가는/ 탄광촌 사내들의 젖은 가슴에도 석탄은 자란다/ 낮은 지붕 위로/ 한여름 내 푸르던/ 미루나무 잎사귀처럼/ 그렇게 무성한 그리움으로/ 석탄은 어둠 속에 묻혀 있다.
신동원 님의 ‘석탄에 대하여’라는 시가 한 벽면에 걸려 있는데 지금은 사양길로 접어든 석탄사업이지만 탄광촌의 애환이 그대로 전해진다.
석탄박물관을 나와 중부내륙고속국도로 올라간다.<2009.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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